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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칼럼] 힙합에 대한 오해와 진실: 힙합은 저항과 가난 속에서 태어난 음악 (2)
[음악칼럼] 힙합에 대한 오해와 진실: 힙합은 저항과 가난 속에서 태어난 음악 (2)
대학원신문
대학원신문 | 등록일 : 2015-10-14 19:43:18 | 글번호 : 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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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에 대한 오해와 진실: 힙합은 저항과 가난 속에서 태어난 음악 (2)

강일권(음악평론가)


지난 글에선 힙합의 탄생을 가난과 직결시키는 것에 대한 오류를 짚고 넘어갔다. 부디 그 글을 읽은 이들만이라도 '힙합 음악은 가난한 흑인들의 음악적 자구책으로 탄생한 것.'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났길 바라며, 이에 못지않게 탄생 배경과 얽힌 또 하나의 오해를 풀어보고자 한다. 역시 많은 이들 사이에서 진리처럼 여겨지는 '랩/힙합은 저항 정신으로부터 태어났다.'라는 부분 얘기다.  

힙합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뒷받침되었던 쿨 허크(Kool Herc)와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 등에 의해 주도된 '놀기'위한 파티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저항 정신과 힙합의 탄생을 직결시키는 것 또한 큰 오류라는 점을 방증한다.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힙합과 저항 정신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랩(Rap)이 도입되는 계기와 단계를 살펴봐야 한다. 쿨 허크가 두 턴테이블과 믹서를 가지고 알앤비와 펑크(Funk) 음악의 간주(Break) 부분을 무한 반복시키는 기술을 통해 힙합의 탄생을 알리며 파티 씬을 장악한 이래, 허크를 비롯한 많은 DJ들은 사람들의 흥을 더욱 돋우기 위한 방편이 필요했다. 그래서 도입한 게 바로 반복적인 즉흥 멘트였다. 쿨 허크는 자메이카 DJ들이 주로 시전하던 전통적인 즉흥 보컬 기술인 토스팅(Toasting)에 기반을 두고 브레이크 중간마다 라임(Rhyme)과 리듬감을 갖춘 즉흥 멘트(필자 주: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다같이 손뼉 쳐, 손뼉 쳐, 모두 같이 손뼉을 쳐~' 같은 일종의 조흥구와 비슷한 개념이다.)를 곁들였는데, 곧 이 파트만을 맡아서 할 인물을 기용하기에 이른다. 이때 허크와 호흡을 맞춘 이가 역사상 최초의 엠씨(MC)로 기록된 뉴욕 태생의 코크 라 록(Coke La Rock)이다.

그는 'You rock and you don't stop', 'Hotel, motel, you don't tell, we won't tell'처럼 오늘날까지도 랩퍼들 사이에서 종종 쓰이거나 모태가 되는 유명한 라인을 구사한 걸로 유명한데, 코크 라 록이 뱉었던 모든 즉흥 멘트들은 공식적인 최초의 랩이었다. 이러한 쿨 허크와 코크 라 록의 콤비 플레이에 영향받아 탄생한 역사적인 싱글들, 대표적인 예로 슈거힐 갱(Sugarhill Gang)의 "Rapper's Delight"이라든지 커티스 블로우(Kurtis Blow)의 "The Breaks" 등이 현재 우리가 듣는 랩의 틀을 갖춘 초창기 곡들이다. 그리고 이는 모두 파티 트랙이었으며, 슈거힐 갱과 커티스 블로우는 저항이나 비판 정신과 거리가 먼 랩퍼들이었다. 이후 이어진 흐름도 마찬가지다. 본격적으로 상업 랩퍼의 서막을 연 두 거장들, 엘엘 쿨 제이(LL Cool J)와 런 디엠씨(Run DMC) 역시 당시 발표한 데뷔작의 초점은 '흥겨움'과 '힙합 문화' 자체였다. 랩/힙합에 저항 정신이 덧씌워지게 된 건 그로부터 약 2년 뒤인 1987년이다. 랩을 '블랙 CNN'이라 정의한 급진적인 힙합 그룹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근데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저항 정신 힙합의 상징적인 존재인 퍼블릭 에너미조차 애초부터 이를 핵심으로 삼았던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또한, 당대의 주요 랩퍼들처럼 처음엔 파티 트랙을 만들었다. 그러나 곧 흑인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팀의 리더 척 디(Chuck D)와 주제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차별성을 고민하던 프로덕션 팀의 행크 쇼클리(Hank Shocklee)의 아이디어가 만나 그룹이 정치적인 색깔 다분한 팀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퍼블릭 에너미가 미국 사회 전반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킬 만큼 위대한 저항의 힙합 음악을 쏟아낸 건 명백하지만, 그 이면엔 최초 엔터테인먼트적인 고려도 있었다는 얘기다. 비슷한 시대를 풍미하며 또 다른 측면에서 저항 정신을 대표했던 갱스터 랩 그룹 N.W.A의 경우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들의 초창기 작업물들, 그러니까 적어도 "Fuck Tha Police"를 제외한 곡들은 인종차별을 비롯한 사회적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곡들이 아니었다. 최근 개봉한 그룹의 전기 영화 [Straight Outta Compton]에서도 어느 정도 묘사되듯이 N.W.A 멤버들은 이전의 랩에서 접할 수 없었던 이른바 '핫!'한 가사의 랩송을 고민했고, 단지 그 방편으로써 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보고 겪은 일들을 담은 것이었다. 그런데 공권력의 투입까지 부른 문제의 싱글 "Fuck Tha Police"를 기점으로 이들의 존재감이 폭발하고 매체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레 저항과 비판 정신의 이미지가 그룹에 투영된 것이다.  

부디 곡해는 마시라. 지금 이들의 저항 정신이 다 계산되고 얻어 걸린 것이었다고 말하거나 업적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핵심은 힙합에 저항 정신이 입혀진 건 랩퍼들의 노골적인 의지가 아니라 그저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길 담은 음악이 반향을 일으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거라는 점이다. 하물며 힙합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저항 정신과 거리는 더 멀어지고 말이다. 힙합이 대중음악의 중심부에 자리잡게 되고, 더 나아가 문화적 현상으로 거론된 데에는 분명 '저항'과 '비판' 정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힙합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을 '저항 정신'이라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지금 한국에서처럼 저항 정신을 마치 힙합의 뿌리, 혹은 전부인 걸로 인식하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 어떤 분야든지 그 순서와 과정을 적확하게 아는 건 중요하다. 전혀 다른 사회 환경에서 태어난 분야라면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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