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3일차] 여름의 철덕도 사랑하세요...?

※ 본 시리즈의 일본어 고유명사 표기는 나무위키 표제어에 등록된 표기법을 따릅니다. 다만 몇몇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0. 철덕의 세부 전공(?)에 대하여

자, 오늘은 시작하기에 앞서

철덕의 덕질 분야를 짚고 가봅니다.

철덕, 철도 마니아 혹은 철도 동호인이라 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철도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본인이 심도 있게 "파는" 분야는 조금씩 다르기도 합니다. 가장 크게는 인도어 철덕이랑 아웃도어 철덕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네요. 아, 물론 이 분류는 순수하게 제가 주관적으로 뇌피셜로 하는 분류입니다.

< 인도어 철덕 >

▲ 물품 수집 : 철도 관련 굿즈, 승차권, (합법적인 경로로 얻은) 실제 차량의 부속품, 우표, 한정판 기념품 등을 모으는 유형입니다. 어찌 보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부류이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아웃도어 철덕보다도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유형입니다. 저는 이것저것 모으지는 않고, 간혹 위 사진 같은 작은 굿즈 있으면 못 참고 사는 편입니다.

▲ 자료 수집 : 철도와 관련한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부류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철도의 역사적 자료를 수집하는 유형이 있겠네요. 그러나 이들이 모으는 자료는 역사적인 자료, 값어치가 큰 자료에 국한되는 건 아니고, 얼핏 보기에는 자질구레해 보이는 것들까지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연도별 서울지하철/수도권 전철 노선도, OO역 시간표 변화, XX역의 배선도, 게시판 공지 양식 같은 걸 모으기도 합니다. 저는 자료 수집까지 하고 있지는 않고, 과거에 KTX 개통과 함께 변화한 상봉역의 배선 구조가 기형적인 것 같아 이를 기록하려고 배선도를 몇 번 그려본 적이 있는 정도입니다.

(어느 역일까요~)

▲ 게임 : Train Sim., BVE, Hmmsim Metro 등의 철도 관련 게임을 즐기는 부류입니다. 특성상 다른 분야도 파는 철덕이 같이 즐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BVE랑 Hmmsim Metro를 심심풀이로 즐깁니다 ㅋㅋ

(언젠가는 꼭 사고 싶은...)

▲ 모형 : 정밀한 철도 모형을 수집하고 즐기는 부류이며, 엄청난 퀄리티의 디오라마를 제작하기도 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위 동영상에 첨부한 코레일 특대형 디젤기관차 모형을 구입하고 싶습니다... 돈 모아야죠 ㅠㅠ 가격이 1량에 200만원이지만 사고 싶음.

▲ 정책 연구 : 철도와 관련된 법(철도안전법, 철도사업법, 철도차량/도시철도 운전규칙 등)이나 정책(요금제,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등)을 공부하는 부류입니다. 실제로 공부 끝에 덕업일치로 나아가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철도도 나름 그렇게 지어진 이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배경(ex. 4호선-과천선 꽈배기굴은 왜 그렇게 지어질 수밖에 없었나) 같은 것들이 은근히 파면 팔수록 재미있답니다.

▲ 공학 연구 : 철도와 관련된 여러 기술(차량제어, 신호설비, 전기계통, 토목/건축, 궤도 등)을 연구하는 부류입니다. 정책 연구가 철덕의 문과라면, 이쪽은 철덕의 이과를 담당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쪽도 진짜 무궁무진하게 재밌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수학은 해봤어도 물리는 아는 게 없다 보니까 공부할 엄두가 안 나네요, 허허... 무서운 건 철도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생각이 없어도 그저 취미(!!)로 공부하는 철덕들이 있다는 점입죠.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세부 분야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저는 인도어보다는

아웃도어 철덕에 가깝습니다.

< 아웃도어 철덕 >

아무래도 살아 움직이는 철도를 즐기려면 밖으로 나가야겠죠? 실제로 기차를 타거나, 사진/동영상을 남기거나, 개통식/종운식에 참여하거나 하는 부류가 여기에 속합니다.

▲ 풍경파 : 제가 제일 관심을 가지는 분야입니다. 철도와 함께하는 풍경을 담는 게 목표인 부류죠. 계절의 변화, 봄꽃 시즌, 그날그날의 날씨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류이기도 합니다. 이번 여행의 1일차 도쿄 도심 풍경 파트가 이 풍경파 사진에 속한다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옛 경원선 전곡역 인근, 영동선 하고사리역, 경부선 미호천철교)

▲ 기록파 : 풍경파와 다소 겹치긴 하나, 초점을 두는 영역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 부류는 철도의 오늘을 기록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기록하고자 하는 부류가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 퇴역을 앞둔 차량의 사진, 동영상, 구동음을 남기거나 직접 이용해 보는 것, 곧 폐선되는 노선에 방문하는 것, 개편되는 제도나 열차를 이용해 보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하겠습니다. 철덕 짬이 많아지면 그간 담았던 철도 풍경이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돼서 그대로 기록 사진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옛 경춘선 화랑대역, KTX-이음 개통 전 중앙선 의성역 일대, 옛 동해선 동방신호장 인근)

▲ 차량/차종파 : 특정 차량이나 차종에 관심을 두는 부류입니다. 곧 퇴역할 예정인 차량을 이용하는 경우라면 위의 기록파와도 꽤 겹칩니다. 갓 데뷔한 철도의 새삥, 곧 퇴역 예정인 철도의 노장, 도입 수량이 적은 희귀종, 특수 차량(경복호, 닥터옐로우 등)을 사냥하고자 하는 부류고, 철도판에서 새로운 차량은 계속 도입될 것이니 콘텐츠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영역이기도 합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2장씩 3호선 광폭형 전동차(전량 퇴역), 무궁화호 NDC 동차(전량 퇴역))

▲ 노선 답사 : 철도 노선을 하나 정해서 이용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부류입니다. 곧 폐선 예정인 노선이라면 역시 기록파와도 꽤 겹칩니다. 갓 개통한 노선에 승차해 보거나, 운행 횟수가 적은 노선을 타보거나, 전구간 완주를 해보거나, 극단적(?)으로는 모든 역에서 승하차를 해보는 것, 이런 것에 재미를 느끼는 부류죠. 이 부분에서 매력을 느낀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튼튼한 허리(...)와 근성이 필요합니다. 이번 여행기에서는 2일차 쵸시덴 답사가 여기에 해당하겠습니다. (사진은 1호선 연천 구간 연장 직후 답사한 것)

▲ 폐선/폐역 답사 : 이미 폐선된 노선이나 폐역을 찾아가는 부류입니다. 철도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흔적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인도어 자료 수집과 겹치기도 합니다. 폐선/폐역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려는 목적도 있고, 역사를 되짚어 보려는 목적도 있고, 평소 가까이에서 보기 어려운 철도 그 자체를 즐기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창원 행암선(사실 폐선 아님), 옛 동해남부선 부산 구간 - 해운대 해변열차로 재탄생하기 이전, 구로구 항동철길(사실 여기도 폐선은 아님))

▲ 화물/임시열차 사냥 : 화물열차 혹은 특이한 열차를 사냥하려는 부류가 여기에 속합니다. 정말 레어한 열차라면 자가용을 이용해 열차 추적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건설화물(군용 화물열차를 뜻하는 말), 변압기 수송차, 황산조차, 평소라면 절대로 입선하지 않는 구간에 들어간 열차 등에 관심을 가지는 부류인데, 아무래도 철도 현직자가 동호인 활동도 겸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운이 따라야 하기도 합니다. 운행 정보가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국군의무사령부 병원차, 태백선에 입선한 KTX-산천)

역시나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실로 많은 세부 분야가 존재합니다.

자, 그러면 이 지루한 내용을 왜 설명했는가? 오늘(3일차) 내용이 풍경이나 노선 답사가 아닌, 기록 혹은 임시열차 사냥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1일차에 우에노역에서 잠깐 봤던 침대특급 카시오페이아를 사냥하는 것이 이번 포스팅의 주된 내용이고, 그러다 보니까 사진과 내용이 풍경을 담는 것보다는 열차 그 자체를 담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네, 사실 본심을 말하자면, 철덕 아니고서는 "그게 뭐 십덕아" 소리가 절로 나올 만한 내용인지라 왜 이번 포스팅의 내용이 이렇게 채워졌는지 나름 변명하는 위와 같은 배경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철덕 중에는 이런 것에 의의를 두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I. 어디선가 봤던 장면인데?

어느덧 3일차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침대특급 카시오페이아를 추격하는 날입니다. 아주 잘 짜여진 계획을 바탕으로 움직여야 합죠. 1일차에 봤던 카시오페이아는 우에노역을 출발하여 센다이까지 가는 하행이었습니다. 그 말은? 상행으로 며칠 뒤 도쿄에 돌아온다는 뜻이고, 3일차인 6월 30일이 바로 그 복편 운행일이었습니다.

작전 개시

그런데 사실 카시오페이아가 도쿄에 가까워지려면 오후 해가 기울 시간대는 되어야 합니다. 센다이가 워낙 먼 곳인지라~ 그래서 오전 시간대에는 도쿄 내에서 유유자적할 여유가 되었습니다. 오전 시간대에 이것저것 담으러 도쿄역 방면 야마노테선을 탔습니다.

▲ 출처 : 도쿄 교통회관 홈페이지

작년 12월 도쿄에 방문했을 때, 미처 방문하지 못했던 도쿄 교통회관이 보이는 포인트에서 도카이도 신칸센을 담을 요량이었습니다. 도쿄 도심과 신칸센! 일본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니까요!!

▲ 24년 12월

그러나 12월 방문 당시에 촬영 포인트가 개방되어 있지 않았던 관계로 유라쿠초역 입구 주변에서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ㅠㅠ... 이번엔 과연 포인트가 개방되어 있을 것인지!?

그런데 이번에도 촬영 포인트는 개방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 아예 "촬영 금지" 안내판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ㅠㅠ...

(이 사건도 다시 보니 카시오페이아네;;)

끙... 그런데 사실 이해는 됩니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자칭 철도 동호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엔 안전이나 시민 불편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신의 덕질만 생각하는 부류도 분명 존재하니까요. 도쿄 도심과 신칸센을 함께 담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리고 그곳이 이젠 출입 불가능한 장소가 되었다면, 그간 어떤 사람들이 다녀갔을지 짐작은 충분히 됩니다.

다소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지만, 이번 포스팅의 주제가 철덕 그 자체이므로 이런 측면도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간 철도 사진을 담으면서 무엇보다 안전해야 하고, 운행에도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지만, 어쩌면 저도 알게 모르게는 누군가에게는 불편을 끼쳤을 수 있고,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는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에밀리아땅

아쉬운 대로 도쿄 교통회관 건물 테라스에서 신칸센 열차를 담았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포인트는 아니지만, 이것으로 헛걸음은 아니었다는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럼 이제 오전에 뭐함?

쩝, 원하는 포인트는 갈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오전 시간대를 그냥 보낼 수는 없죠. 그렇다면 이번엔 실패가 없는, 실패할 수 없는 포인트를 찾아서 가기로 합니다. 이곳은 츄오-소부 완행선과 츄오 쾌속선이 동시에 정차하는 오차노미즈역입니다.

아마 오차노미즈역이라 하면 벌써 무엇을 보러 간 것인지 감이 오는 분들이 꽤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철도판을 넘어 도쿄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눈독 들이는 장소로 성장한 곳...!

JR 오차노미즈역 한쪽 승강장 아래로는 도쿄메트로 마루노우치선이 지나갑니다. 관전 포인트) 열차 상부에 전선(가공전차선)이 없다!! 그렇다면 전동차가 아니라 디젤동차인 것인가?? ㅋㅋㅋ 정답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오차노미즈역 출입구와 맞붙은 히지리바시라는 교량에 올라왔습니다. 이제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브금 틀면 모두 아실 듯)

인기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 나왔던 그 교량입니다. 작품에 등장하기 전부터 철덕 사이에서는 마루노우치선, 츄오-소부 완행선, 츄오 쾌속선 3개 노선을 한 컷에 담을 수 있고, 그들이 입체적으로 교차하는 역동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어 유명했던 곳이랍니다.

그래서 실패가 없는 곳

오늘은 1타3피보다는 소부선(츄오-소부 완행선)에만 집중해서 바라봅니다. 소부선은 오차노미즈역을 발차하자마자 과격한 오르막과 커브를, 그리고 상징적인 연두색 아치교를 지나 아키하바라로 통합니다.

리빙 포인트) 미니어쳐 효과가 있는 카메라나 필터 앱으로 담으면 효과가 매우 확실한 곳입니다.

어거지로 두 노선을 한 번에 담아봅니다. 이 포인트에서 1타3피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도쿄역으로 들어가는 츄오 쾌속선(주황색) 전동차가 적절한 타이밍에 와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ㅠㅠ 마루노우치선, 츄오-소부 완행선은 양방향 모두 잘 보이지만, 이 구도에서 츄오 쾌속선은 오직 도쿄역 방향으로 가는 차만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 이렇게도 쌍피가 되네

쿠당쿠당! 전동차가 철교를 통과하며 발생하는 소음은 이 정도 거리에서도 아주 선명하게 들립니다.

마루노우치선은 약간 아쉬운 것이, 작중 나왔던 그 차종이 전부 은퇴해서 그 장면을 따라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 ㅠㅠ...

거듭 소부선만 집중해서 담아봅니다. 제 옆으로는 저 말고도 두세 명 정도가 있었는데, 전부 일본인은 아니었습니다 ㅋㅋㅋ 저 말고는 모두 서양인 형아였네요.

이번엔 아키하바라로 넘어가는 차

이번엔 아키하바라에서 넘어오는 차, 사실 이곳은 제가 도쿄에 올 때마다 거의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포인트입니다. 그래서 식상한 느낌이 들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맑은 날에 온 건 또 처음이라 나름 즐겁게 담을 수 있었네요.

철수 직전 혹시나 1타3피가 가능할까 싶어서 광각으로도 담아봤는데 역시나 쉽지 않습니다 ㅋㅋ... 두 노선 겹치는 것까지는 꽤 흔하게 벌어지는데, 늘 츄오 쾌속선이 문제입니다.

▲ 1타3피에 성공했던 22년 12월

▲ 『스즈메의 문단속』에 나왔던 차종,

도쿄메트로 02계 전동차

▲ 23년 11월

II. 카시오페이아 사냥

후... 히지리바시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젠 진짜 카시오페이아 사냥에 나설 때가 되었습니다. 오차노미즈역에서 도쿄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츄오 쾌속선에서 내려 도호쿠 신칸센 도쿄역으로 넘어왔습니다. 센다이를 출발한 우에노행 카시오페이아는 이제 곧 제가 사용하고 있는 도쿄 와이드 패스의 커버 범위 안으로 진입합니다. 도쿄 와이드 패스의 사용 범위 경계인 도치기현 쿠로이소역, 혹은 그 이북까지 가서 카시오페이아를 낚으려고 합니다.

▲ 나스노 제259호, 도쿄 → 코리야마

제가 탈 E2계 나스노 열차가 진입했습니다. 위 열차를 타고 나스시오바라역까지 이동한 다음에, 일반열차로 갈아타 쿠로이소역까지 가는 멀고 먼 랑데부 계획! 카시오페이아가 센다이역을 대략 몇 시에 출발했으니 쿠로이소역에는 대략 몇 시에 진입할 거라는, 다소 부정확한 정보 하나만 믿고 도박을 걸고 있습니다. 애초에 확정적으로 공개된 운행 시간표가 없어서 일본 여러 철덕들의 트윗, 그리고 챗GPT(!!)의 예측으로 오늘의 작전 장소를 잡았습니다.

믿는다, 지피티!

출발 진행!

도쿄역에서 도호쿠 신칸센을 1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이곳은 도치기현 나스시오바라역입니다. 도치기현까지 오니 더위가 아주 살짝(?)은 덜한 것 같기도 하고...??

재래선 구역으로 넘어갑니다. 카시오페이아 냄새를 맡은 것 같은 철덕이 저 말고도 많았습니다 ㅋㅋㅋ 도호쿠 신칸센에서 재래선 구역으로 넘어가면서 카메라를 든, 뭔가 동족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습니다.

여기서 딱 한 정거장, 쿠로이소역까지 이동합니다. 쿠로이소역은 무려 도쿄 와이드 패스가 커버하는 범위의 북쪽 경계입니다.

과연 쿠로이소역에서 카시오페이아를 놓치지 않고 마주칠 수 있을 것인가...!!

나스시오바라역에서 재래선 열차로 한 정거장, 드디어 도쿄 와이드 패스 커버 지역의 경계 쿠로이소역까지 왔습니다. 오후 2시 40분 정도 된 시각입니다. 챗GPT는 카시오페이아의 쿠로이소역 도착 시각을 대략 16시~16시 30분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GPT의 말이 맞다면, 15시에 출발하는 보통열차를 타고 한 정거장 더 이동하여(패스권 커버 범위 밖) 카메라를 펼치는 것도 가능한 선택지입니다.

정확한 카시오페이아의 위치나 운행 시간표를 알 수 없는 상황, 여기서 최종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15시에 출발하는 보통열차를 타고 한 정거장 더 이동하여 카메라를 펼칠 것인가, 아니면 쿠로이소역에서 기다릴 것인가? 한 정거장 더 이동한다면 좀 더 역동적인 구도로 카시오페이아를 담을 수 있습니다(구글지도로 미리 확인한 상태). 그러나 카시오페이아와 눈앞에서 엇갈린다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쿠로이소역에서 그냥 기다린다면 다소 심심한 구도일 수는 있으나 카시오페이아를 마주칠 확률은 더 높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미 지나간 상황일 수도 있고요.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혹시 몰라서 한 정거장 더 이동하는 승차권도 미리 구입해 두었습니다.

흠, 이 차를 타야?

아님 말아야...?

최종 선택은 결국 쿠로이소역에서 카시오페이아를 기다리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선택의 근거는 바로 사진에 보이는 승강장 한쪽 끝의 철덕들 ㅋㅋㅋ 저들을 발견하고 쿠로이소역에 그냥 남아 있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겠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금 떠올리자구요, 일본에서 철덕질 하는 와중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면 100퍼 뭔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두둥!

카시오페이아, 강림!

오후 2시 50분 정도 된 시각입니다. 지피티가 예상한 것보다 한 시간 이상 빨리 쿠로이소역에 카시오페이아가 등장했습니다!!

부지런을 떤 보람이...!

특유의 가로줄이 인상적인 카시오페이아! 사진 중앙부에서 살짝 오른쪽, 멀찍이 초점이 맞지 않아 흐려진 부분에 차량 가까이 등화가 하나 점등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발반응표지입니다. 저것이 점등되어 있다는 것은 출발 신호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곧 역을 발차할 수 있다는 의미죠.

카시오페이아는 쿠로이소역에 잠시 정차했다가 우에노로 달려갑니다. 후미 전망칸에 승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입니다.

열차에 탄 승객도, 카시오페이아를 담는 철덕도 서로가 서로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열차의 마지막 운행, 모두가 일종의 축제를 즐기는 듯한 이 분위기가 다시금 카메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게 만드네요.

결국 15시에 발차하는 일반열차가 떠나기도 전에 카시오페이아를 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아, 여기 타고 있었으면 제대로 못 담을 뻔했습니다 ㅋㅋ

▲ 카시오페이아의 내부

(출처 : JR동일본 홈페이지)

자,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도쿄로 카시오페이아보다 빨리 돌아가 다시 접선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챗GPT한테 카시오페이아의 우에노역 도착 예상 시간을 물어봤더니, 대략 17시 30분 정도로 예측하더라고요. 쿠로이소역을 15시경 출발했으니 우에노역에는 17시 30분경 도착할 거라고 하던데, 이번엔 카시오페이아가 언제 어디를 지나갔는지 확실한 정보가 있는 상황이니까 지피티의 예상을 신뢰하기로 했습니다.

쿠로이소역에서 재래선 열차로 다시 한 정거장, 나스시오바라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카시오페이아의 우에노 도착 예상 시간은 17시 30분경, 도호쿠 신칸센을 타고 도쿄까지 빠르게 돌아간다면 카시오페이아를 또 낚을 수 있을지?! 아슬아슬하지만 한 번 더 도박을 시도해 봤습니다.

도쿄로 오는 내내

다시 고민이 시작됩니다.

좋아... 도쿄에서 한 번 더 기회가 있을 것 같긴 한데, 어디로 가야 하지? 우에노역? 거긴 이미 다른 철덕이 포진해 있을 것 같고, 구도도 그닥 좋지 않을 거야. 닛포리역 육교? 거긴 구도는 괜찮긴 한데 마찬가지로 철덕들이 이미 포진해 있을 거고, 철조망도 있어서 깨끗한 사진은 어려울 거야. 그렇다면 어디로...

음......

도쿄로 돌아오는 도호쿠 신칸센 객실에서 다음 접선 장소를 필사적으로 고민했습니다.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을 장소, 다른 철덕이 있더라도 방해가 되지 않을 장소, 카시오페이아 등장 이전에 도착할 수 있을 장소,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최종 촬영 장소는 우에노역 도착 직전에 있는 우구이스다니역으로 정했습니다. 역 내부 승강장에서 찍기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는 역이니 안전한 촬영이 가능하고, 승강장 어디서나 카시오페이아가 지나가는 선로는 잘 보이니 다른 철덕이 많더라도 방해 받지 않는 촬영이 가능하며, 도호쿠 신칸센이 정차하는 우에노역에서 고작 한 정거장 떨어진 곳이라 금세 도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우구이스다니역에 도착! 그러나 저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은 정말 많았던 모양이더라고요 ㅋㅋㅋ 승강장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한가득이었습니다. 심지어 경찰이 승강장 이곳저곳에 여럿 배치되어 혹시 모를 사고나 무질서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던 점은 이렇게 철덕이 많이 모이면 한두 사람 정도 섞여 있을 법도 한 무개념 철덕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노란 안전선 이내 범위에서, 각자의 촬영 프레임에 침입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구도를 잡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미리 자리를 잡은 효과인가 ㅋㅋ

다만 유일한 단점은, 우구이스다니역에 정차하거나 지나가는 전동차가 카시오페이아를 가릴 위험이 컸다는 점... 게다가 전동차의 블로킹으로 대어를 놓친 경험이 최근에 있었거든요. 전동열차가 진입한다는 방송이 나올 때마다 모여든 사람들 얼굴에는 미묘하게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 전동차 블로킹으로 놓친 East-i,

25년 1월 칸다역

그리고 GPT가 예상했던 대망의 17시 30분, 놀랍게도 거의 정확한 시각에 카시오페이아의 견인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7시 33분, 카시오페이아의 견인기인 EF81형 전기기관차가 머리를 들이밉니다. 모여든 사람들 모두 각자의 구도로 각자의 계획대로 촬영에 임합니다. 하나 놀라웠던 건, 전동열차를 기다리는 일반 승객 중에서도 이 기관차가 등장하니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을 꺼내 촬영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철덕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카시오페이아가 어떤 의미를 가진 차량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